[책] 아날로그의 반격
고현숙 교수(국민대, 코칭경영원) - 서평
안녕하세요? 고현숙입니다. 음악을 어디에서 들으시나요? 예전엔 좋아하는 음반의 CD나 레코드판(LP)을 샀지만 이젠 월정액만 내면 음원사이트에서 거의 모든 음악을 들을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런데 무제한 제공되는 음악리스트를 보면서 혹시 멍해졌던 적 있지 않으세요? 보다 더 좋은 것이 있을 것 같아서 어느 음악도 선택하지 못하거나, 막상 음악을 틀어놓고도 몰입하여 듣지 못한 경험은요? 그러다 오래된 턴테이블에 LP를 올려놓고 음악을 튼다면, ‘이렇게 열심히 음악을 들어본 게 언제였나’싶을 건데요. 이는 마치 디지털 음악의 편리함이 음악을 듣는 즐거움을 쏙 빼가버린 것 같습니다. 음악만이 아니죠. 오늘은 책 <아날로그의 반격>을 통해 디지털 세상에 오히려 더 귀해지는 아날로그의 기회를 살펴보겠습니다.
[포스트 디지털 현상]
이 책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이행이 완성되는 시점에, 다시 아날로그 상품이나 서비스가 새롭게 부상하는 현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디지털이 대신할 수 없는 인간적 감수성을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죠. 대표적인 현상을 볼까요? 몰스킨 수첩이 다시 인기를 끕니다. 의류매장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가 인기리에 팔리고 있고요. 식품점 홀푸드마켓은 매장 내 LP판 가게를 입점했다고 발표합니다. 아마존도 시애틀에 오프라인 서점을 열었습니다. 명상강의가 크게 증가하고, 디지털로 인한 집중력 분산의 위험과 대면 상호작용의 장점을 주장하는 강좌가 늘었습니다. 미국에선 LP판을 제작하는 공장이 2010년 이후 급성장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레코드판을 사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영국에서도 LP구매자의 절반이상이 25세 미만이라고 합니다. 디지털 세대에게는 아날로그가 오히려 새로운 것이고 쿨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겁니다.
[종이의 반격]
종이는 디지털에 의해 가장 심각하게 도전받는 기술이죠.‘종이없는 사무실’을 목표로, 서류는 상당부분 이메일, 문자메시지, PDF 등으로 디지털화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날로그 기술이 어떤 영역에서는 디지털보다 더 뛰어날 수 있습니다. 몰스킨 노트가 대표적이죠.(700여 종 제품이 100여 국에 판매, 연매출 1억 유로) 이 노트는 여행기, 낙서, 일기를 끼적거리고, 아이디어를 스케치하는 도구로 자리매김했는데요. 실제로 이탈리아의 한 디자인 회사는 디자이너들에게 몰스킨 노트를 나눠주고 프로젝트 첫 주에는 어도비 포토숍 사용을 금지했습니다. 초기 디자인 구상이 S/W의 생리적 편향에 영향을 받지 않고 종이 위에서 자유롭게 펼쳐진 다음에 컴퓨터로 작업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이 아이디어가 성공적이어서 계속 유지되고 있다고 합니다.
인지심리학자인 대니얼 레비틴은 디지털 정보 과부하가 뇌 건강에 대마초 흡연보다 더 해롭다고 하면서, 노트에 손으로 쓰는 것이 디지털 기기에 기록하는 것보다 더 집중하기 쉽고 기억에 유리하며 정신건강에 좋다고 합니다. 연하장, 축하카드 등을 받을 때 이메일과 손으로 쓴 것이 엄청난 차이를 가져온 것도 이와 같은 거죠.
[실제하는 사진과 보드 게임]
요즘 사람들은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습니다. 편리하고 거의 무제한이죠. 그래서 아날로그 필름은 끝장날 것 같았지만 폴라로이드의 경우 지난 10년간 수요가 줄지 않았다고 합니다. 디지털 사진의 가장 큰 문제는 실제가 아니라는 점인데요. 많이 찍기는 하는데 가족앨범도 없고 인화된 사진도 없습니다. 사진 찍기는 편리하지만 인화하려면 품이 많이 듭니다. 이에 최근 일본에서는 인스탁스가 작고 저렴한 즉석 카메라사업을 시작했고, 화질이 나쁘고 불완전 하지만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는 플라스틱카메라인 로모그래피가 붐을 일으키는 등 틈새시장이 확대일로에 있습니다.
벤 카스타니는 여행 중 우연히 장난감 가게에 들렀다가 어릴 때 자신이 푹 빠졌던 보드게임을 다시 접합니다. 한국, 독일, 브라질에도 보드게임 카페가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2년 동안 중고가게까지 찾아다니며 보드게임을 수집했고, 토론토에 보드게임 카페를 엽니다. 술집이나 클럽을 대신할 놀이거리를 찾던 젊은이들이 찾아들었습니다. 친구들, 커플들이 많았죠. 이렇게 테이블 게임은 디지털 세상과는 다른 고유한 사회적 공간을 만들어 냅니다. SNS가 화려한 정보와 짧고 재치있는 말들, 가장 빛나는 순간과 자랑거리로 채워져 있어서 사람들은 오히려 외로움을 느끼게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보드게임은 함께 창조해나가는 우정을 만들어냅니다. 컴퓨터나 휴대폰 게임과는 비교가 안 되죠.
[다시 살아나는 오프라인 매장들]
서점은 인터넷 시대에 크게 변화했습니다. 온라인 서점들이 가격 경쟁력과 다양성, 사용자 서평과 별점, 책 추천 알고리즘, 편리한 구매 등으로 장악하는 듯했습니다. 아마존은 단숨에 출판시장의 1/4를 차지했죠. 이렇게 서점의 장례식장으로 가는 길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절망적인 예측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오프라인 서점이 다시 늘기 시작한 겁니다. 2000년대 초 1만 개에서 2014년에는 1만3천 개로 늘어났죠. 이곳들은 작은 서점이지만 손님에게 좋아할 만한 책을 권하는 핸드셀링 문화를 갖고 있습니다. 인터넷 서점은 알고리즘으로 비슷한 책을 자동 추천하죠. 서점 점원이‘이 책 참 좋습니다.’라고 추천을 듣는 경험과는 완전히 다르죠.
서점 뿐 아니라 아이티 제품들에서도 오프라인 매장이 중요해진다고 합니다. 2001년 애플 스토어를 선보였을 때, 애널리스트들은 2년 이내에 철수할 것이라고 했지만, 지금 애플 스토어는 가장 성공한 매장 중 하나로, 직원 1인당 50만 달러 매출을 올립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종이노트, 보드게임, LP판에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자는 ‘소유’와 ‘즐거움’이라고 말합니다. 턴테이블에 LP판을 내려놓는 동작을 통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나의 것’을 만드는 기쁨을 얻습니다. 우리의 일상에서 디지털은 너무도 익숙하기에 속도와 효율이 아닌 특별한 물리적 경험을 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디지털 세상이 왔다고 해서 아날로그가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간과했던 아날로그의 가치를 새삼 느끼게 됩니다. 감사합니다.
프롤로그 진짜가 아니라는 느낌
새로운 프리즘/ 포스트디지털 시대의 돌파구
1부 아날로그 사물의 반격
1장 레코드판 스마트폰을 탈출한 미래 세대의 음악
사람의 손길이 필요한 일/ 스트리밍이 부활시킨 레코드판/ 젊은 사람들이 턴테이블을 사고 있어요/ 데이비드 보위의 떨리는 목소리/ 번갯불과 반딧불이
2장 종이 가장 오래된 제품의 새로운 미래
노트 메이커에서 디지털 시대 아이콘으로 / 종이 노트는 전원도, 부팅 시간도, 동기화도 없습니다/ 몰스킨이라는 브랜드 DNA/ 실리콘밸리 기업이 종이 명함을 주문하는 이유 / 가장 창의적인 테크놀로지
3장 필름 로모그래피와 인스타그램이 말하는 것들
코닥 공장의 폭파 사진/ 21세기에 필름 회사를 차린다고? / 로모그래피와 인스타그램/ 잠자는 거인을 깨워라/ 임파서블 프로젝트/ 깨어난 포스
4장 보드게임 네트워크 바깥의 네트워크
‘쿨’한 사교의 공간 / 거기서 사람들은 다가가고 이야기하고 웃는다/ 상대의 표정을 읽어내는 재미/ 게임 소믈리에 / 보드게임의 디지털 활용법/ 게임 디자이너의 밤
2부 아날로그 아이디어의 반격
5장 인쇄물 무겁기 때문에 무게 있는 이야기
독립 잡지 구독 서비스/ 트래픽과 독자의 차이점/ 스마트해지는 느낌을 팝니다/ 완독의 즐거움/ 풀뿌리와 틈새시장의 반격
6장 오프라인 매장 알고리즘이 말하지 못하는 것들
유브 갓 오프라인/ 점원이 추천하는 책 / 아마존 성공의 함정/ 애플 제품을 가장 비싸게 사는 곳/ 뉴욕의 풍경에서 책을 치워보세요 / 북컬처
7장 일 로봇을 대체한 노동자들의 이야기
디지털 경제의 창조적 ‘파괴’/ 상처받은 자동차의 도시/ 인간의 판단력을 되찾아오다/ 승자 독식의 디지털 비즈니스/ 1루타와 2루타로 득점하는 게임 / 지역 공동체를 위한 투자
8장 학교 아이패드가 교사를 대신할 수 있을까?
즐거움과 교육적 효과의 차이/ 아이들에게 노트북을 한 대씩 주자/ 교육 혁신: 교사와 학생이 빠진/ 공감 능력은 어떻게 길러지는가/ 디자인 사고/ 의심하는 연습/ 교사들이 해왔던 일/ 교사와 학생의 관계
9장 실리콘밸리 낮에는 코딩, 밤에는 수제 맥주
언플러깅/ 리노베이션 디지털/ 마찰과 창의성의 관계/ 새로운 얼굴의 아날로그/ 우리 몸도 아날로그잖아요
에필로그 여름의 반격
테크놀로지를 금지해서 ‘보존’하려는 것/ 균형을 찾는 과정
감사의 말
역자 후기
참고 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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