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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고싶은 커피향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고들 하죠..
나의 삶 안에는 항상 타인의 삶이 공존한다는 진리 !!!
때론 과감하게 .. 빠르게..
가끔은 느리게..
이십 년 이상 안경을 쓰다 라식수술을 한 지인이 있습니다. 그에게 안경은 신체의 일부분과 같았고 안경을 벗고 세상을 본다는 사실에 그는 감동했습니다. 근데 만나는 사람 중 이 사실을 알아보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심지어 “네가 안경을 썼었냐?”라고 되묻는 사람까지 있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후 그는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사람들은 내게 별 관심이 없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에게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근데 우리는 어떤가요? 다른 사람의 시선에 묶여 하루하루를 살아갑니다. 싫어도 다른 사람을 의식해 결정을 하고 일을 합니다. 오늘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되는 여러 문제들을 명쾌하게 풀어낸 책 ‘미움받을 용기’를 소개합니다. 심리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철학을 일본학자가 쉽게 풀어 쓴 책입니다.
인생은 인간관계의 연속
인생은 자립하고 사회와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는 겁니다. 사회적 존재로 살려면 인간관계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 고민의 대부분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됩니다. 인간관계를 해치는 감정 중 하나는 열등감입니다. 열등감은 주관적 감정입니다. 키에 대해 열등감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작은 키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더니 상대는 이렇게 말합니다. “키는 커서 뭐 하려고? 넌 사람을 편하게 하는 재능이 있잖아.” 그는 작은 키를 다르게 해석했습니다. 작은 키가 문제가 아니라 작은 키에 대해 어떻게 해석하느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느냐, 어떤 가치를 주느냐가 행동을 결정하는 겁니다.
행복해지려면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미움 받으면서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근데 모든 사람에게 사랑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어차피 미워할 사람은 나를 미워하고, 사랑할 사람은 나를 사랑합니다. 진정한 자유란 굴러 내려가는 자신을 아래에서 밀어 올려주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돌멩이와 다른 존재입니다. 경향성에 저항할 수 있습니다. 굴러 떨어지는 자신을 멈추고 비탈길을 올라갈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인정을 위해 비탈길을 계속 굴러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유란 본능이나 충동에 저항하는 겁입니다.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겁니다. 그건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지 않는다는 건 부자연스러운 동시에 불가능한 일입니다. 자유에는 대가가 따릅니다. 자유를 얻으려면 타인에게 미움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행복해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겁니다. 적면공포증에 걸린 여학생이 있습니다. 좋은 남자 앞에서 얼굴이 붉어지는 병입니다. 왜 그런 일이 일어날까요? 그런 병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여학생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남자에게 차이는 겁니다. 그럴 때 적면공포증은 좋은 핑계가 됩니다. “그 남자를 못 만나는 것은 적면공포증 때문이야”라고 스스로 위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적면공포증만 나으면 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만 살고 싶은 겁니다. 결정적 순간에 감기에 유난히 잘 걸리는 사람도 비슷한 케이스입니다. 감기에 걸리면 모든 것이 용서되기 때문입니다. 감기 핑계를 대지만 사실은 감기에 의존해 살아가는 겁니다. 그게 없어지면 인생 자체가 피곤해집니다. 또 다른 핑계거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대인관계의 핵심, 과제 분리
대인관계를 잘 하기 위한 핵심 중 하나는 과제의 분리입니다. 나의 과제와 그 사람의 과제가 뭔지를 생각하고 이를 구분하면 관계가 편해진다는 말입니다. 아이의 전공 문제, 군대문제, 심지어 결혼문제까지 깊숙이 관여하는 부모가 있습니다. 왜 자꾸 타인의 과제에 개입을 할까요? 편하기 때문입니다. 애가 신발끈을 매지 못합니다. 도와주면 문제는 간단합니다. 기다리는 것보다 낫습니다. 근데 아이의 과제를 빼앗는 꼴이 됩니다. 그런 개입이 반복되면 아이는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합니다. 과제를 직시할 용기를 잃게 됩니다. 곤경에 직면해보지 못한 아이는 곤경이 닥칠 때마다 그것을 피하려고만 합니다. 당신이 의견을 낼 수는 있지만 최종 결정은 자식이 해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부모들이 자녀를 사랑한다는 미명 아래 자녀와 등을 지고 사나요? 상대를 믿는 것은 당신 과제입니다. 여기부터 저기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라고 경계선을 정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과제분리 개념을 알게 된 이후 많은 것이 편해졌습니다. 내가 한 제안을 상대가 받아들이지 않을 때가 그렇습니다. 예전에는 제안을 할까, 말까, 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어떡해하지란 생각을 하느라 머리가 복잡했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제안을 하는 것은 나의 과제다, 이를 받아들이냐 아니냐는 상대의 과제다. 얼마나 심플합니까?
공동체 감각은 유지하라
인간관계의 목표는 공동체 감각입니다. 타인을 친구로 여기고 내가 있을 곳은 여기라고 느낄 수 있는 겁니다. 공동체 감각은 social interest라고 합니다. 사회적 관심입니다. 사회의 최소단위는 가족이 아닙니다. 너와 나 두 사람이 있으면 그게 사회입니다. 공동체 감각을 기르기 위해서는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이 필요합니다. “나는 강하다, 나는 할 수 있다”라는 자기긍정은 그럴 듯 하지만 자칫 자신을 속이는 행위가 될 수 있습니다. 위험합니다. 자기수용은 하지 못하는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나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자신을 속이지 않고 부족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겁니다. 긍정적 포기입니다. 과제분리와 마찬가지로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하는 겁니다. 불가능한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자기수용입니다.
다음은 타자신뢰입니다. 신뢰의 반대는 회의입니다. 남을 의심하고 친구를 의심하는 겁니다. 의심의 눈으로 상대를 보면 상대는 바로 느낍니다. 발전적 관계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배신할지 안 할지를 결정하는 것은 내가 아닌 타인의 과제입니다. 그저 내가 어떻게 할 것인가만 생각하면 됩니다. 신뢰하지 못하면 누구와도 깊은 관계를 맺을 수 없습니다. 타자신뢰를 통해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용기를 가질 때 인간관계의 즐거움이 늘어나고 기쁨이 커집니다.
마지막은 공헌입니다. 공헌은 내가 남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가장 좋은 타자공헌은 일입니다. 노동은 돈 버는 수단이 아닙니다. 노동을 통해 타인에게 공헌하고, 공동체에 헌신하며,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무언가 공헌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현실이 다르게 보입니다. 남들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상관없습니다. 인간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 자기 가치를 실감합니다.
지금 어디를 보고 있는가?
인생은 찰나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지금 여기를 살아갈 수 밖에 없습니다. 춤을 추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금 여기에 강력한 스포트라이트를 비치면 과거도 미래도 잘 보이지 않고 현재만이 보입니다.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건, 미래에 어떤 일이 벌어지건 상관없습니다. 난 지금 이곳에서 열심히 즐기며 살 뿐입니다. 인생 최대의 거짓말은 지금 여기를 살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를 보고, 미래를 보고, 인생 전체에 흐릿한 빛을 비추면서 뭔가를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져 있는 겁입니다. 과거나 미래가 아닌 지금 여기, 타인의 시선이나 인정이 아닌 여러분 자신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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